2012년 6월 14일자 "오마이뉴스" 대경영상의학과의원 김경호 원장님 기사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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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tmri 작성일12-06-15 10:18 조회6,8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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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수가제’가 최선? 의사는 답답하다.

[주장]의료질 떨어질 수도 있어... 밀어붙이기 아닌 소통 통해 풀어야

최근 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이 첨예화되고 있다. 정부는 포괄수가제가 국민의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의료계의 과잉진료를 막는 좋은 제도라고 열심히 선전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의료계의 반발을 두고 '환자를 볼모로 삼는 집단이기주의', '전문가들의 밥그릇 챙기기' 등으로 매도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처럼 포괄수가제는 국민을 위한 훌륭한 제도이고, 의사들은 돈벌이에만 눈이 먼 부도덕한 집단인가?

포괄수가제, 진료를 가격으로 규격화해 의료 질 떨어질 것

정부의 주장과 그 허상에 대하여 하나씩 짚어 보도록하자. 정부는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비 상승, 진료비 청구심사 업무 과중, 의료인과 보험자 간 마찰, 의료서비스 왜곡 등의 문제점이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포괄수가제 도입이 필요하고 주장한다.

국민의 의료비 경감이 기대되고, 의료계에는 적정수가에 대한 보상이 되며, 행정적으로 청구와 심사에 대한 업무량이 줄고, 보험자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로 소요되지만 장기적으로 재정운영의 예측 가능성이 제고되어 재정안정화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포괄수가제는 1983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행되었으며 진료의 폭을 일정 가격으로 규격화하여 제한하는 제도이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일정부분 성공(시행되고 있으나 많은 부작용이 있다)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외국과 한국의 큰 의료 환경 차이를 생각한다면 성공여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또 외국과 달리, 현행 행위별 수가의 상대가치 점수가 원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데도 이 수가에 다시 포괄수가제를 적용하려는 것은 의료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여 국민이 양질의 의료를 선택할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윤 추구라는 동기가 자연스러운 민간 의료기관의 경우 의료 질 저하는 불가피해 보이고, 의학발전의 측면에서도 새 이론이나 치료법, 첨단 의료용구 적용 등의 의욕을 상실시킬 수 있다. 중증환자에 대한 진료 기피현상도 우려된다. 경한 환자나 중증 환자나 같은 금액을 지불받으므로, 지금 이대로 포괄수가제를 시행한다면 손실을 피하기 위한 중환자 기피현상은 반드시 발생될 것이고 그로 인한 사회적 지탄은 의료계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진료비 심사 청구시 업무가 간소화된다는 장점도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교적 단순한 수술인 충수 절제술의 경우에도 가능한 경우의 수가 1000여 가지에 달하기 때문에 행위별 수가에 비해 진료비 청구와 심사절차가 절대 간소화되지 않을 것이고, 포괄수가제 제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의 질 저하를 감시할 새로운 인원이 필요하게 돼 행정업무가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모든 병원이 '최저가 의료'로 마진 남기려 할 것

정부는 지금도 포괄수가제를 선택적으로 실시하고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확대시행하겠다고 한다. 정말 문제가 없을까? 기존의 포괄수가제와 7월 1일부터 시행하는 포괄수가제는 분명 차이가 있다. 

기존의 포괄수가제는 비보험 항목이 합법이었다. 예를 들어 영양제, 장유착방지제 등 비보험항목이 전부 합법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포괄수가제에서는 3차병원의 1인실이나 특진비를 제외한 비보험이 불법이 된다. 영양제, 장유착방지제 다 불법이라는 이야기다. 

이처럼 기존에는 행위별수가제가 있어 포괄수가제라도 질이 떨어질 이유가 없었으나 이제는 행위별수가제를 하는 경쟁병원이 없어, 한정된 가격 안에서 똑같이 포괄수가제를 하는 병원끼리 싸워야하므로 수술법과 재료는 비슷해지게 된다. 


수술방에서 어떤 실로 수술했는지 환자가 알 수 있을까? 장유착방지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사용했다고 하면 환자가 알 수 있을까? 결국 모든 병원이 최저가 의료로 마진을 남기려 할 것이므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똑같이 싸구려 의료재료를 쓰고, 똑같이 복강경 안 쓰는 식으로 해서 최저 의료수준으로 통일시킬 것이 뻔하다. 

경쟁해서 좋은 재료 쓴다는 것은 기대하지 말자. 우리나라 병원의 대부분은 민간 의료기관이고, 이윤을 남겨야 하는 사기업이다. 의사가 이윤추구를 한다고 해서 욕하지는 말자, 그들도 돈 벌어서 세금내고 살아가는 민간인이니까.

정부는 진료수가는 대부분 의사단체가 직접 작성한 의사 업무량과 진료비용을 고려해 산정하였으며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을 앞두고 진료수가도 평균 2.7% 인상됐다고 주장한다. 돈을 더 주겠다는데 의사들은 왜 반대하는가? 돈 벌기 싫어서? 한마디로 이는 거짓말이다. 무엇보다 기존에 행위별 수가제에 사용하던 비보험 항목을 무조건 50%로 가격을 낮춰서 포괄수가제에 포함시켰다. 기존에 10만 원 주고 비보험으로 사용했던 의료재료를 5만 원으로 산정해서 포함시켰는데 그것을 사용해서 5만 원 적자보는 병원이 있을 것인가? 

정부의 주장대로 현재 포괄수가제에 참여도가 높다면 대형병원들이 포괄수가제에 거의 참여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현재도 대형병원은 복잡한 환자가 많아 행위별수가제가 더 이득이기 때문에 포괄수가제를 거의 시행하지 않는다. 만약 포괄수가제가 강제시행되면 대형병원은 특진비와 1인실 사용료를 낼 수 있는 환자만 선택적으로 받아 적자를 보전하려 할 것이다. 그렇지않으면 대형병원도 손해볼 것이므로 병원장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1인실 사용 안 한다는 환자한테는 병실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건정심 통과만으로 포괄수가제 시행 결정은 문제

포괄수가제라는 제도 자체도 문제점이 분명있지만, 그것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더욱 큰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포괄수가제 같은 새 제도의 시행을 법 개정이 아니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회의에서 통과만 하면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정심은 건강보험정책 결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로 만들어졌다. 위원들은 가입자와 공급자, 공익단체가 각 8인씩 총 24명으로 구성된다. 단순히 위원들만 보면 각 단체들이 민주적으로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료계의 요구가 절대 반영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급자 8인 중 3명(의협 2명, 병협 1명)만이 의료계 인사가 선임되고 나머지는 한의협, 치과협, 간협, 약사협 대표가 선임된다. 

중립적 조정자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공익단체 대표는 복지부, 재정부, 건강보험공단, 심평원 등의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말이 공익단체이지 정부측 인사로 구성돼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건정심의 외형은 합의기구이지만 정부가 미리 정해놓은 결론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성원의 역학 계산을 하자면 16:8이고, 특히 이번 포괄수가제 같은 경우에는 한의협, 치과협 등 직접 관계없는 대표가 굳이 정부의 눈총을 견뎌가면서 의사쪽의 손을 들지 않아도 된다. 실제 이번 포괄수가제의 경우는 22:2로 의견이 나누어졌다. 정부측과 공익단체에서 밀어붙이고 나머지 직능단체대표들이 끌려가게 되면 2명이 아무리 반대해도 논의가 될 수 없는 구조이다. 

이런 측면에서 의협은 건정심 탈퇴라는 카드를 선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리 반대해도 정부는 들으려 하지않고 미리 결정해놓은 길로 밀어붙이고, 표결에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 말이다. 찬반을 떠나 회의 석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의협도 합의한 것으로 포장되어 발표될 것이고, 건정심을 탈퇴하면 정부와 시민단체에서는 밥그릇 챙기기라고 매도할것이 뻔하고… 진퇴양난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니겠는가?

정부는 건정심을 여러 직능단체의 합의체로 쓰기 보다 전문가 단체의 목소리를 '합법적'으로 묵살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회의 구성원들의 원만한 합의와 민주적 절차를 밟아 법안을 개정한 듯 포장하는 정부의 '꼼수'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의협은 탈퇴를 선언하면서 전문가단체의 의견이 묵살당하는 불공정한 논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복귀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해 앞으로 건정심은 파행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건정심의 불합리한 구조에 대한 문제점은 의료계는 물론 감사원에 의해서도 지적된 바 있으나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해 왔고 오히려 잘못된 의료정책을 강행하는 합법적 도구로 자주 악용해왔다. 

전임 집행부가 포괄수가제 합의했다는 보도 사실 아냐

정부는 2011년 보험재정 절감을 위해 짜맞추기식 조사를 실시한 후 CT, MRI의 가격을 일방적으로 인하하였으나 의료계의 행정소송에 패소한 바 있다. 정부는 그러나 건정심을 통하여 다시 CT, MRI의 가격을 인하하려 진행하겠다고 한다. 

인건비, 장비값, 유지보수비는 매년 인상되는데 검사비를 대폭 내리라고 하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병원은 없을것이다. 이번에도 건정심에서 의협대표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으나 묵살되고 진행되었다.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으나 민간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의 짜장면 값을 정부에서 10년째 못 올리게 억제하다가, 정부 주도의 관제 회의에서 의결하고 강제로 인하하라면 어느 음식점 주인이 합당하다고 받아들이겠는가?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겪었다. 정부는 각종 연구결과, 외국사례를 나열하고, 의약분업의 장점을 총력을 다해 선전하고, 의료계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했었다. 정부는 의약분업으로 의사와 약사의 전문성 보완으로 의약품 소비가 감소되어 재정이 절감되고 추가적인 국민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에 의료계는 의약분업이 건강보험 재정을 파탄낼 것이고, 국민 불편 및 부담 가중의 문제점이 있어 시범 사업과 보완책을 마련하자고 했었다. 그 후 10년간 의료계의 주장대로 보험의 누적 적자는 커져만 갔고 재정이 절감된다는 정부의 주장은 우스갯소리가 되었다. 정부는 의료계의 의견을 묵살한 대가로 늘어나는 보험의 누적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온갖 절감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지금 의사들이 느끼는 것은 한마디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며, 분노이다. 지금 일부 언론에서는 전임 집행부가 합의한 포괄수가제를 현 집행부가 뒤엎었다는 보도가 사실인양 나오고 있다. '의결'된 사실을 '합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전임 집행부도 포괄수가제에 대한 입장은 현 집행부와 다르지 않았다. '선보완 후시행'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럼에도 의협이 합의를 뒤집은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정부는 '합의를 뒤엎었다'며 국민 여론이 의협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상황을 유도하며 이번사태를 전문가 집단의 밥그릇 챙기기로 매도하고 있다. 

정부는 부족한 보험재정을 보존하기 위해 결론을 미리 짜맞추어 놓고 일방적으로 의사들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제도의 단점을 숨기고 장점만 부각시켜 대국민 홍보에만 열을 올릴뿐 단점을 보완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더욱이 건정심 같은 이상한 제도에 의사를 들러리로 앉혀 놓은 후 다수결로 처리하고 합의했다는 식으로 포장하려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민주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정부는 '꼼수' 버리고 소통하려는 자세 필요

시민단체는 시장에서 물건값 깎듯 싸면 무조건 좋다는 식의 발상을 접어야 한다. 언론은 지금처럼 수박겉핥기식의 옮기기 기사를 지양하고 심층적이고 전문적인 기획 보도로 양측의 입장을 제대로 분석하여야 한다. 의협은 정부를 이해시키고, 국민들에게 이 사태의 본질을 알려 당사자인 국민들이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제도 자체가 우리 의료계와 맞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지만,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일방통행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더욱 큰 문제이다. 의사들은 다가올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고 강제로 밀어붙이는 정부를 불신하고, 건정심에 분노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에게 필요한건, 건정심이라는 '꼼수'를 버리고 '소통'하려는 진정어린 자세가 아닐까. 

엄이도종(掩耳盜鐘)이란 말이 있다.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이 말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아보지만 결국은 소용없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진나라 범무자의 후손이 다스리던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성 중 한 명이 종을 훔치려다 너무 커서 못 옮기게 되자 종을 깨서 가져가려 했다. 그러나 종을 치니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이를 누가 들을까봐 자신의 귀를 막고 종을 깼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부는 귀를 막고 있지만 결국 종소리는 크게 울릴 것이다.

포괄수가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의료자원을 덜 투입하도록 유도해 재정을 줄이는 '덜 내고, 덜 받는' 제도이다. 제도 시행 전에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안내를 해서 환자, 의사, 보험자 모두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합의한 후에 제도를 실시하지 않으면 진료현장에서 반드시 마찰이 발생될 것은 명약관화하며 그 모든 불만은 고스란히 의사와 의료기관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잘 아는 의료계에서 포괄수가제에 반대의 입장을 밝힌 것은 당연하다. 일선 의료현장에서 느끼는 의사의 위기감은 10년전 의약분업 파업사태 때의 그것과 닮아 있다. 아픈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김경호 기자는 의사이며 대구광역시의사회 정책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