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무타구치 렌야의 임팔작전과 닮은 한국 의료 현실(대구신문26.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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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경영상의학 작성일26-04-09 12:22 조회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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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대경영상의학과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을 앞당겨 한국의 독립에 간접적으로 공을 세운 일본군 장군 무타구치 렌야(牟田口 廉也)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 중장이었던 그에게는 오늘날 ‘연합군의 숨은 공로자’라는 조롱 섞인 별칭이 따라다닌다. 황당한 작전으로 정예 병력 10만 명을 몰살시켜, 전쟁을 조기에 끝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인류 전쟁사상 최악의 작전 중 하나로 꼽히는 ‘임팔 작전(Battle of Imphal)’이 그의 작품(?)이다.
1944년, 일본은 전황이 급격히 악화하자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때 무타구치는 인도 점령이라는 허황된 목표를 내걸고 버마(현 미얀마) 국경을 넘어 인도 임팔(Imphal)로 진격하는 작전을 제안한다. 임팔은 인도 북동부 아삼 지방에 위치한 연합군의 중국행 보급로의 시작 지점으로 전략적 요지였고, 이곳을 점령한다면 중국군의 보급을 끊어 전황의 대반전을 노려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치 앞도 안보이는 울창한 정글과 험준한 2천m급 산맥을 통과해야 하는 이 작전에서 보급 대책이 전무했던 것이 문제였다.
현장 지휘관들은 ‘보급 없는 진격은 자살행위’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무타구치는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라며 10만 군사를 정글속으로 밀어 넣었다.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라고 기가 차는 방법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하라며, 심지어 정글의 식용 식물을 정리해 도감으로 만들어 부대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일본은 텐무천황(天武天皇)이 675년 불교 전파와 함께 육식금지령을 공포하여 메이지유신 직전까지 천 년이 넘게 육식을 금했던 나라이긴 하지만, 20세기에 그것도 전쟁 한복판에서 ‘초식동물’은 지휘관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애당초 아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약 10만 명 중 3만 2천 명이 전사하고, 병사 및 아사자 2만 명, 부상자 2만 3천 명으로 무려 80%를 넘는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보통 사상자가 전체 병력 중 20~30%면 전투 속행 불가능, 즉 전멸로 판정되는데 80% 정도면 전멸 수준을 넘어 몰살이라 하겠다. 패주하던 일본군들이 동료들의 시체들로 가득한 후퇴로를 ‘백골가도(白骨街道)’라고 한탄할 정도였다. 부하들을 사지로 내몬 무타구치 렌야는 안전한 후방의 사령부에 기생집을 차려놓고 매일 음주가무를 즐겼다. 그러다가 전황이 악화되자 사령부 옆에 소규모 신사를 만들어 신령들에게 승전을 빌며 신사참배에 열중하여 그나마의 전선 지휘 업무조차 중단했다. 결국 이 작전 실패로 일본군의 정예 병력과 자원은 완전히 고갈되었고, 이는 일본이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무타구치 렌야의 가장 큰 죄악은 ‘현장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채 자신의 정치적 야망과 상부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했다는 점이다. 일본군 최고 지휘부의 문제도 심각했다. 이런 무능한 장군을 중용하고 실패해도 문책하지 않았으며, 실패에서 배우는 것도 없었다. 무타구치 렌야는 처벌받지 않고 일본육사 교장으로 전근 가서 전쟁후까지 편안하게 살았다. 일본군 작전 교리도 개선되지 않아, 무모한 ‘반자이 돌격(バンザイ突擊)’이나 ‘가미카제 특공대’, ‘1억 옥쇄(一億玉碎)’같은 뻘짓만 반복하다가 패망해버렸다.
놀랍게도 현재 대한민국 의료계의 상황은 80년 전 임팔 작전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전 정권이 추진했던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은 무타구치의 임팔 작전과 비슷한 수준의 무모한 정책이었다. 이 비상식에 의사들과 미래 의료의 주역인 의대생, 전공의들은 온몸으로 맞섰다. 기초의학 교수 인력 및 실습 기자재의 부족으로 인한 교육 질 저하,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 파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1년 반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잃었고,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환자들의 고통은 ‘백골가도’의 재현이었다.
2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정권은 교체되었으나 이 황당한 의대 증원 정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했을 뿐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역사는 준엄하게 경고한다. 현장의 실상을 무시한 탁상공론의 강행은 결국 파멸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한민국 의료가 임팔의 정글에서 길을 잃고 쓰러지게 내버려 둘 것인지 의료계와 협력을 통해 상생과 발전의 길을 모색할 것인지,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풀 뜯어먹는 ‘초식동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